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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거나 2010. 10. 8. 21:33


중학생 때 성적표가 나올 때 마다 선생이 등수가 떨어진 애들을 팼다.
물론 나도 맞기도 하고, 성적이 오르면 맞지 않고 넘어가기도 하고 그랬다.
체벌의 강도도 굉장했다.
성적이 많이 떨어진 애들은 그만큼 존나게 처 맞아야 했다.
요즘도 학교에서 성적을 이유로 체벌을 하는지 궁금하다.

단일항목을 기준으로 인간을 서열화해서 존나게 패는 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던 시절이 있었고,
내 자신도 그걸 당연시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지금은 좀 신기할 정도다.
이걸 의문시하고 직접 행동으로 옮긴게 고3 시절이었으니,
그 기간동안 나는 그저 생각없이 존나게 처 맞으며 의미 없는 불만만 토로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.

그 땐 왜 성적이 내렸다고 맞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.
하지만 그것보다 더 슬픈 건,
간단한 계산으로 모든 학생이 동일한 성적을 내지 않는 한, 
'내가 안맞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맞는다.'는 사실이다.
실제로 성적표가 나올 때 마다 그 선생의 몽둥이는 불을 뿜어댔다.
애들한테 밥그릇 싸움을 가르치는 것이다.

물론 그 선생도 상부로부터의 압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.
혹은 자신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신성한 교권을 행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.
하지만 왜 단 한 사람도,

'세상은 원래 이렇다. 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너희들에게 그걸 가르치고 있는거다. 낙오하는 놈은 죽는 것이다.'

라고 말하면서 단지 존나게 패는 게 아니라,

'세상은 원래 이렇다. 나도 그렇게 살아왔다. 하지만 내가 살아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. 인생이란 단일항목의 서열화로 결정되는 게 결코 아닌 것 같다.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의 피해자는 내 대에서 끝내겠다. 나는 비록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너희들은 그걸 너희들의 인생으로 증명해다오.'

하는 사람이 없었을까.

적어도 나는 내 평생의 학창시절 동안 그런 '스승'을 만나본 기억이 없다.

나는 선생이 되지는 않았지만,
그게 어느 분야의 후배가 되었든 간에,
내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다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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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bloodguy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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